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튼 패츠 실종사건 (문단 편집) == 사건 경위 == 1979년 5월 25일, 당시 만 6세 소년이었던 이튼 패츠는 이 날 부모의 동행 없이 혼자서 등교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튼이 스쿨 버스를 타는 곳은 집에서 겨우 2블록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곳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은 충격에 빠졌다. 왜냐하면 사건이 일어난 때가 어두컴컴한 밤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소위 말하는 슬럼 가도 아닌 곳에서 어린이가 실종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당연히 뉴욕 경찰은 물론이고 FBI까지 수사에 동원되었으며 이튼 패츠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비교적 이른 아침에 실종되어 목격자가 없었고 사건의 단서조차 남아 있지 않아 도무지 사건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이튼이 저항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면식범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사건 발생 후 4년이 지난 1983년에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은 이튼 패츠가 실종된 날이었던 5월 25일을 이른바 세계 실종 아동의 날로 지정함을 선포했다. 이 선포에 [[캐나다]], [[유럽]] 등 전 세계가 동참했으며 [[한국]]에서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부터 제정되었다. 그리고 우유팩에도 이튼 패츠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미국인들이 우유를 마시는 사소한 일을 할 때에도 이튼 패츠를 꼭 기억하고 이 아이를 찾는데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한편, 이튼의 부모는 대부분의 실종 아동을 둔 가족들이 그러하듯이 아들은 살아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수십년 째 이사를 가지 않고 그곳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해결되지 못했으며 무려 30년이 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결국 이튼 패츠는 실종된지 22년 만인 2001년에 법적으로 사망 처리가 되고 말았다. 이튼이 법적으로 사망 처리 되면서 이 사건도 서서히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